1.
2008년 무기수에서 모범수로 특별사면 대상이 된 남자가 있었다. 20년 만에 교도소 밖에 나온 남자는 20년만큼 달라진 세상에 내던져졌다. 1990년도의 기억이 전부였던 그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 멈춰있었다. 사소한 일상의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과제였다. 당연히 그는 고민했다. 나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강압수사에 의해 거짓 자백을 하고 20년 동안 교도소에 있던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2020년, 이제는 무죄 판결을 받고 떳떳하게 자신을 찾고 있는 남자의 사연을 방송으로 접하고,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본다. 빼앗긴 시간,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새로운 세상.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에게서 사라진 시간’, ‘시간이 흐른 뒤 나에게 놓인 새로운 세상 마주하기’
2.
사회적 제도에 의하면 물리적으로 어떤 나이가 되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정해진 연령에 학교에 들어가 의무교육을 받고, 성인으로서의 의무와 권한을 갖게 되고, 남성은 병역을 해결하기도 한다. 제도가 아닌 관습으로도 어떤 나이대에 따라 의무를 갖기도 한다. 결혼은 대략 언제쯤, 취업은 언제쯤, 어느 나이가 되면 재산은 어느 정도에 어떤 위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런 ‘어른’이 되어서도 동심에 거부감이 없어서 여전히 ‘아이’의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키덜트’라고 부른다. <Men will be boys>라는 작품에서 해당 성향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 1970년에 발표된 걸 보면 ‘키덜트’는 근래 생겨난 유행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근본 성향 중 하나로 보는 게 타당한다. 하지만 이런 ‘키덜트’를 바라보는 다수의 ‘어른’들은 이를 유아적 퇴행이나 미성숙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리적인 나이에 따라 제도와 관습에 부합하는 적당한 사회적 역량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정확히 ‘어른’의 정의는 내릴 수 없지만 본 작품을 통해 관객과 각자의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누구나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석봉은 41살의 중년이지만 여전히 19살에 머물러 있는 미성숙의 소년이다. 석봉은 물리적인 나이로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석봉이에 공감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사람들마다 ‘어른’에 대한 기준은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어른’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악역이 없어 따뜻한 작품
이 작품엔 악역이 없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때론 상처를 주고, 소통하기 어려워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석봉의 주변인들은 석봉에게 잔소리를 하지만 내심 석봉을 응원한다. 오랜 소년의 성장을 응원하는 따뜻함이 가득한 장면 속 인물들의 시선은 관객석의 그것과 같다.
이야기의 주인공 석봉이는 점심시간이면 농구를 즐기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하고,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가보다는 만화 주인공 ‘서태웅’을 동경했던 소년이었다. 어느 날 농구를 하다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렇게 22년이 흐른다.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석봉은 이제 41살 중년이 되었다. 22년 동안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석봉을 치료하던 의사 선생님과 재혼했다. 석봉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낯선 세상이다. 새로운 삶을 이어가기 위해 검정고시 학원을 다닌다. 과거의 기억만 갖고 있던 석봉에게 사람들은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라고 조언한다. 과거를 잊고 딛기 위해 석봉은 과거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사랑 ‘하나’는 이제 중2 아들을 가진 주부가 되었고, 석봉과 농구를 했던 ‘오일’은 치킨집 사장이 되었다. 22년 전 멈춘 농구 게임을 다시 하며, 과거를 날려버린 석봉은 22년 전의 자신과 이별하고 41살의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석봉의 곁에는 검정고시 학원 친구 ‘이화’가 함께한다. 보고 배울 어른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이화’를 석봉은 동경한다. 석봉과 ‘이화’는 전국을 돌며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연들을 마주한다.